ARTIST 유수지(Yoo Suzy)
ARTWORK 우리가 가야할 곳
EDITION 2023
MATERIAL Oil on canvas
SIZE 145.5x112.1 (cm)
유수지| Yoo Suzy
켜켜이 쌓이는 계절과 계절사이 엉겨 붙어 떨어지지 않는 것들에 대하여 생각하곤 한다. 그것은 풀과 풀 사이에서, 새와 벌레의 쫓고 쫓기는 긴 찰나의 순간에서, 두꺼워져 가는 나와 나무의 피부 껍질에서 발견할 수 있다. 겨울에서 봄 그리고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자연스러운 흐름 속에서 변화하는 대상의 순간을 담아두고 싶었고, 그것들이 지극히 평범한 모습과 닮아 있었으면 했다.
시간을 역행하지 않은 채로 변화하는 것은 어느 쪽으로든 의미가 있다. 계절의 틈새 속 나도, 그림도, 날씨도, 친구들과 가족들도 모두 다른 어떤 지점을 지나치며 변하고 있다. 지점과 지점 사이의 텅 빈 공간을 견딜 수 있는 이유는 우리에게 부여된 연결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커다란 자연 속 분주한 새와 벌레가 나무와 꽃과 물과 연결되어 있듯이 찾으려 하지 않아도 내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있다.
자연스럽게 있는 걸 자연스럽게 그린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나는 개미와 벌과 새의 모습으로 생(生)에 참여하곤 한다. 서로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유연하게 존재한다. 붓에 묻어 우연히 쓰이는 색과 미끄러져 틀어진 형태를 가리지 않고 가만히 둔다. 그렇게 생긴 조각들은 차곡차곡 쌓여 작업의 방향이 되기도 하고, 다음 지점에서의 변화를 이어주기도 하였다.
촘촘히 짜이고 엮여 끊어지지 않는 것들을 많이 발견하고 싶다. 그렇게 의미 있게 변화하고 싶다.
- 작가 노트 중에서 -
나는 이제서야 모든 것이 하나로 이어져 있음을 안다. 자연의 형태, 바람의 모양 그리고 멀리서 가까이에서 관찰자이자 모험가의 자세로 자연을 바라보는 나는 동그랗게 이어져 느리게 순환한다. 이 연결은 쉬이 끊어지지 않아서 마음이 어려울 때에는 자연을 찾고 그 안으로 되돌아가고 싶게 되는 것이다.
돌아가고 싶은 곳을 떠올리다 보면 꽃과 나무, 바다와 강, 해와 산, 덩굴과 흙, 새와 달 같은 게 떠올랐다. 낯설고 특별한 풍경보다는 잘 알고 있는 자연의 모양을 일기처럼 기록해두고 싶었다. 기억이 흐릿해지면 밖으로 뛰쳐나가 집 옆 작은 강을 따라 걸었다. 강물 옆에는 각종 야생 식물이 아무렇게나 자라 있었는데 그곳을 걷는 동안 만난 아름다운 것들은 느리고 분주하게, 고요하고도 소란하게 움직이며 나를 깨어있게 하였다. 누구의 자리도 탐내지 않고 위로 아래로 뻗어나가며 순환을 반복하는 생명들은 그것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과 함께 그림에 뿌리 깊게 박혀 변치 않을 안식처가 되어주었다.
이는 인간과 자연의 본질을 탐구하고 사유하여 결국 스스로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의 기록들이다. 또한 지나가거나 멈춰 서거나 절망하거나 쉼을 찾으면서도 머무르지 않고 나아가겠다는 의지와 다짐이다.
걸으며 우연히 마주친, 혹은 무의식적으로 목격한 자연의 모습들로 이루어진 형태들은 사진처럼 자세히 묘사되기보다는 기억에 남아있는 간결함으로 명료하게 표현되었다. 경험과 기억들은 실재하는 식물들과 함께 인식과 감각이 포함된 색과 형태로 조화롭게 섞여 일기처럼 그려지고, 어느 한 부분이 강조되기도 생략되기도 하며 개인적인 인상이 포함된 모습으로 의미 있게 변화하기도 하였다.
식물들은 빈 틈을 채우며 물리적인 공간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입체적이었던 공간은 틈을 메운 자연물에 의해 평면처럼 보이기도 한다. 식물처럼 촘촘하게 혹은 과감하게 캔버스를 덮어나가며 길들여지지 않은 풀의 곡선처럼 오랜 시간 붓을 움직일 때 나오는 자연스러운 모양과 색을 좇아 그림을 완성하고자 했다. 그것들은 질감으로, 형태로, 색으로 표현되며 손톱만큼 작게 표현되기도 하고 그림 전체를 덮을 만큼 크게 나타나기도 했다. 어떤 그림은 색을 여러 번 쌓아 단단하게 완성되었고 어떤 그림은 물감을 두껍게 발라 간결한 터치로 그려졌다. 그린다는 과정 속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려내는 대상에 투영된 생각과 마음이고 표현의 방법은 찾으려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찾아지는 것 같았다. 짧거나 긴 호흡으로 그려지는 모든 우연한 과정은 자연스러움과 닮아있으며 이 작은 닮음은 시간이 흘러도 퇴색되거나 사라지지 않고 영영 남아있을 소중한 것을 생각하게 했다.
멀리서 보면 곧게 직립한 나무기둥도 가까이 보면 수없이 많은 곡선의 짜임으로 이루어져 있듯 그림으로 재현된 일기 같은 순간도 바라보는 이들의 생의 모습과 비슷한 결로 짜여있음을 담아내고 싶다. 특별할 것 하나 없는 모두의 삶은 서로를 묶고 우리는 결국 점점 더 동그랗게 이어질 것이다. 사라지기 전까지 자연의 품 안에서 존재의 이유와 가치를 발견하고, 잊어버리고, 다시 찾아가는 과정을 반복하는 나와 너를 사랑하며. 모든 재현의 과정들이 사라지지 않는 마음의 안식처가 되기를 소망하면서.
- 작가 노트 중에서 -
CONTACT
EMAIL hiobjecthood@gmail.com
번호 | 제목 | 글쓴이 | 등록일 |
작성된 질문이 없습니다. |